
국내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도입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여전히 '검색'이나 '요약' 같은 단순 정형 업무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기획이나 창의성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업무에서는 활용도가 대단히 낮은 실정이다. AI가 가져온 개인의 생산성 향상이 회사 전체의 성과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병목 현상도 관찰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2일 '생성형 AI 시대의 직무재설계와 혁신 방안' 보고서를 내고 이 같은 내용의 재직자 설문 및 대기업 심층 인터뷰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7월 국내 기업 재직자 10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화학, IT, 자동차, 금융 등 7개 대기업의 인사 및 AX(AI 전환)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함께 이뤄졌다.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이 AI를 적용해 가장 큰 효율을 얻었다고 답한 분야는 '자료 검색 및 정보 수집'으로 전체의 33.4%를 차지했다. '긴 글 요약 및 핵심 파악'이 22.4%, '데이터 정리 및 기초 분석'이 15.1%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획안 구상'에 효과가 있었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번역 및 외국어 소통'(1.1%), '프로젝트 계획 수립'(1.0%) 역시 미미한 수준이었다. 자료 검색의 효율 개선 체감이 기획안 구상보다 24배나 높게 나타난 셈이다.
직장인들은 업무 성격에 따라 AI의 역할을 이미 스스로 구분해 대응하는 분위기다.
5점 척도 조사에서 '자료 분석 및 정보 해석'(2.70점)이나 '문서 작성 및 기록'(2.75점)처럼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AI에게 넘겨 자동화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점수가 낮을수록 AI 대체 선호도가 높음을 뜻한다.
반면 '외부 소통 및 고객 관리'(3.50점), '내부 소통과 협업'(3.37점) 분야에서는 사람이 직접 주도하겠다는 경향이 뚜렷했다. 사람 중심의 주도를 선택한 이유로는 "최종 판단이나 책임은 사람이 직접 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37.9%로 가장 많았고, "창의성이나 감성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응답도 32.3%에 달했다.
회사 차원의 AI 도입 방식에 대한 불만도 확인됐다. 기술 자체의 성능 문제보다는 조직이 AI를 밀어붙이는 방식에서 거부감이 터져 나왔다.
도입 형태에 따른 만족도를 살펴보면 직원 개인이 자율적으로 도입해 쓸 때 만족도가 96.3%로 가장 높았고, 노사 협의를 거친 경우는 95.9%였다. 반면 회사가 위에서 아래로 지시한 탑다운 방식의 만족도는 87.9%로 떨어졌다.
불만족을 표한 이들은 그 이유로 '일방적인 하향식 도입 방식'(51.3%)을 첫손에 꼽았다. 갑작스러운 도입에 따른 심리적 부담(37.2%)이나 교육 지원 부족(29.5%)이 그 뒤를 이었다. 툴을 주면서 무작정 쓰라고 강요하는 방식이 오히려 현장의 반발을 부르는 모양새다.
개인의 업무 속도는 빨라졌는데 조직 차원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지체' 현상도 지적됐다.
응답자의 76.0%가 AI 활용으로 개인 성과가 좋아졌다고 느꼈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성과가 개선됐다고 본 비율은 72.6%로 떨어졌다. 데이터나 AI 관련 직무를 전담하는 인력 그룹에서는 조직 성과 기여 인식이 55.6% 수준에 그쳤다. 개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데이터가 조직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단계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개별 노동자의 작업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기업 현장에서는 직무별 맞춤형 교육(45.2%)과 명확한 목표 설정 및 성과 보상(38.7%)을 우선 과제로 요구했다. 단순 툴 사용법을 넘어서는 인사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나동만 선임연구위원은 "현장 근로자들은 AI를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으로 보기보다 본인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 다루고 있다"며 "기업은 직원의 역할을 지휘자나 편집자로 재정의하고 프롬프팅 역량과 산출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HR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 필요성도 언급됐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AI 협업 역량을 새로 넣고, 도구 사용법보다는 비판적 사고와 질문 능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와 함께 단순 정형 업무에 수년간 익숙해진 인력이 과연 한순간에 AI 결과를 검증하고 총괄하는 '편집자' 역할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 필요한 구체적인 육성 경로와 시간적 비용을 분석하는 일은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