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고 내수 회복이 더뎌지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중소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기로에 선 경영자들의 고민은 늘 비슷하다. 세무서에 폐업신고서 한 장 내고 조용히 사업을 접을 것인지, 수임료와 법원 예납금 등 비용을 들여서라도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할 것인지다.
상당수 경영자는 이미 기울어버린 회사에 돈을 더 들일 이유가 없다며 무작정 폐업신고만 한 채 회사를 방치하곤 한다. 10여 년간 530여 건의 도산 사건을 처리해온 법률사무소 윈앤윈 채혜선 변호사는 이런 선택이 경영자 자신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를 치르고 사망신고와 상속포기로 남은 가족을 보호하듯, 법인 역시 파산절차로 이해관계를 정돈해야 회사를 이끌었던 대표 개인이 보호받는다는 설명이다.
가장 먼저 터지는 문제는 직원들의 체불임금이다. 현행 임금채권보장법상 회사가 도산하면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를 대신해 최종 3개월분 임금과 3년치 퇴직금을 상한액 범위 내에서 지급한다. 과거 체당금으로 불리던 도산대지급금이다.
직원들이 대지급금을 받으려면 회사가 임금을 줄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 공식 입증돼야 한다. 법원의 파산선고 결정문은 그 자체로 회사의 '사망진단서' 역할을 한다. 파산 신청 비용이 들더라도 이를 통해 직원들의 밀린 급여를 대지급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경영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는 대표이사 본인의 형사 처벌 수위와도 직결된다. 근로자가 대지급금을 신청하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어야 하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대표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형이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사정은 파산절차를 밟을 때 달라진다. 대표가 대지급금 수령을 위해 적극적으로 파산을 신청하고, 파산관재인 조사에서 고의적인 재산 은닉이나 체불이 없었음이 확인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지급금을 받은 직원들이 처벌불원 탄원서를 제출해줄 경우 양형에서 크게 유리해지며, 사안에 따라 형사처벌 자체를 면하기도 한다.
채권자들의 거센 빚 독촉에서 벗어나 재기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도 파산절차가 주는 실질적 이점이다.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고 파산관재인을 선임하면 법인등기부상 대표권은 관재인에게 넘어가고 대표이사는 대표권을 상실한다.
자연스럽게 채무 독촉의 화살이 대표 개인을 직접 겨누기 어렵게 된다. 스스로 법원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 자체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으나 불가피하게 파산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횡령이나 배임 같은 불법 행위가 있는 경영자는 관재인 조사가 두려워 파산을 쉽게 신청하지 못한다는 점을 채권자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점주주인 대표이사를 따라다니는 '세금 폭탄'을 줄이는 데도 파산이 유용하다. 회사가 낸 세금을 다 못 갚으면 과점주주는 제2차 납세의무를 진다. 세금은 파산이나 회생으로도 면책되지 않는 채무다. 회사 재산이 남아있다면 이를 처분해 세금부터 우선 변제하는 것이 대표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다른 채권자들이 이미 회사 자산에 가압류를 걸어뒀다면 임의로 매각해 세금을 갚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파산절차가 시작되면 관재인이 기존 가압류 효력을 무력화하고 자산을 환가해 우선순위인 조세채권부터 갚아나간다. 대표 개인이 짊어져야 할 제2차 납세의무 액수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함께 버텨준 거래처와의 관계 정리 측면에서도 파산이 유리하다. 파산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채권 회수가 불가능해지면 거래처는 해당 금액을 대손금으로 처리해 법인세 부담을 덜 수 있다. 또 관재인을 통해 공정하게 자산이 매각·배당되면 경영자의 도덕적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어 훗날 재기를 모색할 때 자산이 된다.
특허권이나 전용 장비 같은 지식재산권도 무작정 문을 닫으면 고철값으로 전락하지만, 파산관재인을 통한 공정한 매각 절차를 거치면 제값을 받고 처분해 세금 변제 등에 충당할 수 있다. 임의 처분 시 발생할 수 있는 사해행위취소 소송 위험도 피할 수 있다.
채혜선 변호사는 "폐업신고만 하고 회사를 방치하면 당장 들어갈 파산 비용은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체불임금 형사책임과 채무 독촉, 세금 부담이 전부 대표 개인에게 돌아온다"며 "법인파산은 무너진 회사를 정리하는 절차인 동시에 경영자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법적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