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어머니와도 같았던 선생님이 유방암으로 큰 아픔을 겪었다. 서지흔 코비트 대표는 그때부터 유방암 수술 이후 재수술 문제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KAIST에서 만난 연구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시 품었던 의문은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됐다.
코비트는 암 수술 중 절제한 조직을 3차원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형 CT 장비 ‘마진엑스(MarginX)’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지난 27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2026 하반기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FAIR’ 현장에서 서지흔 대표를 만나 창업을 결심한 이유와 공동창업자를 만난 과정,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들며 마주한 현실을 들어봤다.
서지흔 코비트 대표 [사진=김종욱 기자]
일상의 문제를 발견하던 학생, 의료기기 창업에 나서다
먼저 코비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코비트는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작은 CT 장비를 개발하는 회사다. 일반적인 CT는 환자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엑스레이 발생 장치와 검출기가 주변을 회전하며 몸속 정보를 얻는다. 저희는 반대로 수술 중 떼어낸 조직이 회전하고 엑스레이 발생 장치와 검출기는 고정된 구조를 개발하고 있다. 처음에는 2차원 영상으로 검체를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2차원 영상만으로는 조직의 모든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3차원 영상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고도화했고, 지금의 장비로 이어졌다.
이전에도 두 차례 창업했다고 들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창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학부에서 경제학과 공학을 공부했고, 그때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하나는 반려견 관련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 친구들과 원격 정신과 진료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두 사업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제가 살아가면서 발견한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거치면서 취업보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한 뒤 창업으로 풀어가는 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KAIST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에도 다시 창업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평소에도 주변의 문제를 유심히 살펴보는 편인가.
그렇다.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편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왜 이곳의 신호는 이렇게 긴지, 이 시간대의 교통량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왜 아직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한다. 그런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좋아한다. 경제학을 공부하다 공학까지 복수전공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저는 원래 숫자를 좋아하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확실한 결과를 얻으려면 오히려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일이 특히 중요한 창업에 관심이 더 커졌다.
여러 문제 중에서도 유방암 수술에 주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정말 존경하던 선생님이 계셨다.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 정신적으로도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분이다. 저에게는 어머니와 비슷한 존재였는데, 유방암으로 많이 고생하시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부터 왜 유방암 수술에서 재수술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그 문제를 제가 직접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KAIST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지금의 공동창업자를 만나면서 그때의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존 검사 기술에 빈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료진이 더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채워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술 창업으로 이 문제에 도전하게 됐다.
서지흔 코비트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공동창업자 및 팀원들과 KAIST E5 창업 경진대회 대상 수상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코비트]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공동창업
공동창업자인 아마르 프라사드 굽타 CTO와는 어떻게 만났나.
정말 우연이었다. KAIST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네트워킹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창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자리였다. 저는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외국인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석했다. 거기서 방글라데시에서 온 신입생 두 명과 친해졌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기술 창업을 하고 싶어서 함께할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신들이 속한 연구실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도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분이 지금의 CTO다. 그렇게 소개를 받아 처음 만나게 됐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곧바로 창업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저는 해결하고 싶은 문제와 사업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CTO는 방사선 기술과 의료 현장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CTO에게도 제가 사업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 팀을 꾸릴 때 첫 창업 경진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저는 이 문제에 정말 공감하고 있고, CTO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기술도 믿는다고 말씀드렸다. 대신 제 역량은 앞으로 6개월 안에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괜찮으시면 함께 창업하자고 제안했고, 실제로 KAIST의 E5 창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함께하기로 했고, 이후 법인을 설립했다.
연구자와 사업가가 만나 개발한 마진엑스는 실제 수술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암 수술에서는 종양을 떼어낸 뒤 절제한 조직의 가장자리와 암 병변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설명할 때 빵에 곰팡이가 생긴 상황을 비유로 들곤 한다. 곰팡이가 생긴 부분을 잘라냈다고 해도 잘라낸 빵의 가장자리에 곰팡이가 남아 있다면 충분히 제거했다고 보기 어렵다. 암 수술도 비슷하다. 절제한 조직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절제면’과 암 병변 사이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마진엑스의 ‘마진(Margin)’은 이 절제면을 뜻하고, ‘X’는 저희 기술의 기반인 엑스레이를 의미한다. 저희 장비는 절제한 조직을 360도 회전시키며 촬영하고, 이를 3차원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기존 검사 장비보다 크기와 무게, 검사 시간을 크게 줄였다고 들었다. 실제 수술 현장에서는 어떤 차이가 생기나.
기존 검체 영상 장비는 크고 무거워 수술실 안에 설치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절제한 조직을 수술실 밖의 영상의학과로 보내야 하고, 이동과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대기 시간이 발생한다. 기존 장비는 무게가 100~400kg에 달하지만, 저희는 이를 약 15kg 수준으로 줄여 수술실 안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외래수술센터(ASC)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시설은 대형 병원과 달리 영상의학과나 병리과를 별도로 갖추지 않은 곳도 있다. 저희처럼 작고 가벼운 장비라면 공간이 제한적인 수술실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검사 시간도 중요한 문제다. 수술 중 절제면을 확인하는 데 사용하는 동결절편검사는 조직을 급속 냉동한 뒤 얇게 잘라 현미경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검사에 45분에서 60분 정도 걸리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면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동안 환자는 마취 상태로 기다려야 하고 의료진도 수술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대기해야 한다. 저희는 필요한 영상 정보를 약 6분 안에 제공해 의료진이 수술 중 신속하게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환자의 마취 부담과 의료진의 대기 시간, 수술실 운영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현재는 유방암 수술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른 암 수술에도 활용할 수 있나.
물론이다. 유방암이나 갑상선암, 두경부암은 정밀한 절제가 필요한 암종이다. 절제 범위를 세밀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절제면과 암 병변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저희도 우선 유방암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절제면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모든 암 수술에서 중요하다. 폐암이나 위암 같은 경우에는 재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비교적 넓은 범위를 절제하거나 완전 절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절제면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워 의도적으로 절제 범위를 넓게 잡아 온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기술로 절제면과 병변의 관계를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면 이런 수술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유방암뿐 아니라 다양한 암 수술에 범용적으로 도입되는 장비를 만들고 싶다.
서지흔 코비트 대표(왼쪽)가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FAIR 현장에서 관계자와 함께 부스에 놓인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종욱 기자]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
의료기기 개발 과정에서는 기술 외에도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결정은 무엇이었나.
처음에는 저희가 가진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기존 시장에 없는 새로운 의료기기를 만들려고 했다.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암 조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능까지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개발할 역량도 있었다. 그런데 의료기기는 기술만 완성한다고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기능을 가진 장비라면 새로운 인허가 절차와 보험수가 적용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주변에서도 새로운 의료기기 인허가에는 5년,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제품 전략을 바꿨다. 첫 제품은 기존 의료기기 분류와 인허가 체계 안에서 출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하고, 이후 데이터를 축적해 더 높은 수준의 기능에 도전하기로 했다. 저희끼리는 '오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발할 수 있는 기능을 당장 제품에 담지 않기로 한 결정이 아쉽지는 않았나.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시장에서 신뢰받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도 생각해야 했다. 저희가 처음부터 이 장비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외과의들이 그 결과를 곧바로 신뢰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첫 제품에서는 영상을 제공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은 의료진이 하도록 했다. 먼저 제품이 시장에 자리 잡고 회사와 기술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그다음 단계에서 진단 기능까지 확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기술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시장에 진입하는 순서를 바꾼 것이다.
서지흔 코비트 대표가 지난 26일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FAIR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종욱 기자]
대표라는 자리에서 얻은 확신
코비트를 창업하고 대표로서 회사를 이끌어 온 과정은 어땠나.
저는 경제학과 공학을 공부했고 창업 경험도 있었지만, 핵심 의료기기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사람은 CTO였다. 그래서 왜 CTO가 아니라 제가 대표를 맡느냐는 질문을 직설적으로 듣기도 했다. 저 스스로도 정말 제가 대표를 하는 것이 맞는지, 이 회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 투자사와 미팅했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한 투자자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까지 보여준 사업 실행력을 보고 투자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CTO가 10년 넘게 연구해 온 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데 저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다. 그 경험이 이후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이끌 때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코비트를 어떤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은가.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암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재수술에 대한 위험과 걱정을 덜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 번의 수술로 치료가 충분히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의료기기는 스타트업이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큰 병원이나 대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코비트가 실제로 해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한국에서, KAIST에서 시작한 작은 창업팀도 의료기기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분야에 도전하려는 다른 창업가들에게도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되는 회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창업을 하면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눈빛이 빛난다고 느꼈다. 저도 그런 눈빛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다. 아직 무엇으로 창업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다만 제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더라도, 다음에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결이 필요한 문제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해야 그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투자를 받기 위한 창업이 아니라 정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업을 한다면 사업을 이어가는 데에도 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