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서 기술의 성능을 높이는 일과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한 기술 창업기업에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그 가치를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KAIST 창업원 최명재 교수는 기술 창업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요구에 맞춘 연구개발과 지식재산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고객과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26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2026 하반기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FAIR’ 현장에서 최 교수를 만나 행사 개최 취지부터 기술 창업의 어려움, 창업원의 지원 사례와 향후 과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FAIR는 어떤 취지로 마련된 행사인가.
KAIST는 연구 중심 대학인 동시에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기술을 사업화하는 창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창업인 동반성장 FAIR는 이러한 기술 창업 사례를 소개하기 위해 1년에 두 차례 마련하는 행사다. 연구 성과를 사업화한 창업기업들을 통해 국내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을 KAIST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의미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실제 기업들의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KAIST뿐 아니라 국내 4대 과학기술원과 더 많은 청년에게 우리나라의 다양한 스타트업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 좋은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성장시키는 창업팀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이다.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계속 고도화하되, 그 과정에서 고객의 요구에 맞는 연구개발(R&D)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하나는 지식재산권(IP) 확보다. 기술 창업기업은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연구를 계속하거나 시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지식재산권으로 확보하는 것이 딥테크 스타트업의 성장에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시장에 진출할 때 가장 많이 부딪히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KAIST는 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최고기술책임자(CTO) 성향이 강한 최고경영자(CEO)와 구성원들이 많고, 상대적으로 마케팅에는 약한 부분이 있다. 국내외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직접 인터뷰하거나 설문조사를 해야 한다. 당장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제품을 제공하면서 사용 데이터와 실적을 쌓아야 할 때도 있다. 지역적인 어려움도 있다. 대전에서 기술 창업을 하지만 주요 고객사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아 고객과 만나는 데 제약이 생긴다. 고객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창업 교육과 기업가정신 교육도 중요하다. KAIST 창업원은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창업원의 지원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이룬 사례를 소개한다면.
폴리페놀팩토리를 사례로 들 수 있다. KAIST 이해신 교수가 창업한 기업으로, 홍합의 성분을 활용한 탈모 샴푸 '그래비티'를 개발했다. 이 교수는 관련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왔지만, 연구 성과를 최종 제품으로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당초 시제품 제작에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창업원의 컴퍼니빌더 조직에 참여하면서 그 기간을 6개월로 줄였다.
창업원에는 다양한 분야의 겸임교수들이 있다. 하나의 제품을 개발할 때 6명에서 많게는 12명까지 참여해 도면 설계부터 시험·평가, 인증 등을 지원한다. 필요한 경우 마케팅과 관련 기업 연결도 돕는다. 폴리페놀팩토리 역시 마케팅 인력이 필요할 때 관련 기업들과 연결을 지원했다. 교수 창업자가 혼자 진행했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일을 여러 전문가가 함께하면서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폴리페놀팩토리의 연매출은 2023년 약 20억 원에서 2025년 약 200억 원으로 증가했고, 제품이 아마존에도 입점했다고 알고 있다.

- 최근 기술 창업 분야에서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나.
국내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 온디바이스 반도체의 방열 기술, 우주항공 등 세계 시장의 기술 수준에 맞춰 도전하는 창업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사의 연구개발 기술까지 분석할 수 있다. 과거에는 다른 기업의 기술 수준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연구개발 성과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해외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수준의 시제품을 개발했는지, 실제 고객을 확보하고 매출을 올리고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접하면서 창업기업들도 자신들의 기술 수준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6년 전과 비교하면 연구개발 수준이 높아졌고, 기술을 뒷받침하는 검증 자료도 더욱 구체화됐다고 생각한다.
- 자신의 기술로 창업해도 될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나.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쉽게 지치지 않을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창업은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기도 하고, 투자자에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업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제품을 잘 만드는 능력만으로 창업을 결정하기보다는, 완성도가 100%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고객에게 그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제품 완성도가 70%인 단계에서도 고객에게 제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투자자에게 자금을 확보하면 어떻게 제품을 발전시키고 매출을 만들어 낼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과 함께 이러한 설득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앞으로 KAIST의 창업 지원에서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KAIST의 기술력과 창업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Y콤비네이터나 스탠퍼드대학교, UC버클리 같은 해외 창업 생태계를 경쟁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KAIST 창업기업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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