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 데이터가 초 단위로 쏟아지는 제조 현장에서 불량의 원인은 수십 분 또는 수시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 가운데 단 몇 초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짧은 몇 초의 이상신호를 정확히 포착해내는 국내 스타트업의 연구가 글로벌 최상위 학술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AX·자율제조 전문 기업 인터엑스는 정찬영 선임연구원과 정하일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참여한 연구 논문이 산업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IEEE TII(Transactions on Industrial Informatics)’에 게재 확정됐다고 8일 밝혔다.
IEEE TII는 산업 AI와 지능형 자동화, 로보틱스, Industrial IoT 등 산업정보학 분야를 대표하는 SCI(E)급 저널이다. 2025년 기준 저널 임팩트 팩터(JIF)는 9.8에 달하며, 스코퍼스(Scopus) 기준 관련 분야 상위 2% 이내에 위치한 세계 최상위권 저널로 꼽힌다.
제조 현장의 가공 설비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에도 수천 건 이상의 센서 데이터가 수집된다. 전체 구간의 99% 이상이 정상 상태로 보여도 정작 제품 불량을 유발하는 이상 신호는 특정 순간에만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다. 기존 시계열 데이터 분석 기술들은 이렇게 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용량을 줄이거나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는 축약 방식을 주로 썼다. 이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미세 이상 신호가 손실되거나 묻히는 한계가 명확했다.
인터엑스가 개발한 ‘SegMIL(Segment-based Multiple Instance Learning)’ 알고리즘은 이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긴 시계열 데이터를 구간 단위로 나누어 효율적으로 연산하면서도 각 구간의 맥락 정보를 종합해 전체 데이터의 이상 유무를 분류한다. 장시간 축적된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도 불량과 직접 연관된 아주 짧은 이상 구간을 정확히 집어내는 구조다.
현장 적용성을 고려해 모델 구조를 비교적 가볍게 설계한 것도 특징이다. 아무리 정확도가 높은 AI 모델이라도 연산량이 지나치게 크면 실시간 처리가 필수적인 제조 현장 도입이 어렵다. 경량화된 구조 덕분에 현장 설비나 엣지 컴퓨팅 환경에서도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단순히 AI 모델의 분류 정확도를 끌어올린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설비 모니터링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불량이 나올까"라는 제조 현장의 고질적인 의문과 답답함에 AI가 명확한 시점과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연구 성과는 회사의 대표 상용 솔루션인 ‘Quality.AI’를 비롯해 회사가 보유한 품질 분석 및 공정 AI 기술 라인업 전반에 순차적으로 이식된다. 제조 현장의 불량 원인 추적은 물론, 설비 고장을 사전에 감지하는 예지보전과 품질 예측 고도화에 직접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로 참여한 정하일 CTO는 인터엑스에서 제조 데이터 표준화부터 제조 특화 AI, 생성형 AI, AI 에이전트,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자율제조 기술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인물이다. 정 CTO는 지난 5월 열린 제61회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제조 공정 자율화를 위한 AI 원천기술 개발과 산업 현장 적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회사는 이번 IEEE TII 논문 등재를 통해 제조 현장의 실제 문제를 원천기술 연구로 해결하고, 이를 다시 상용 제품과 자율제조 시스템으로 완성해 나가는 특유의 R&D 선순환 체계가 글로벌 학술 무대에서도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정하일 인터엑스 CTO는 "제조 AI 분야에서 참된 가치는 단순히 이론상 정확도가 높은 모델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놓치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데 있다"며 "그동안 축적해 온 제조 데이터와 원천기술을 발판 삼아 글로벌 제조 AX 기술의 표준을 지속해서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