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0여 년간 추진해 온 ‘사회적 가치’ 측정과 보상 실험이 단순한 사회적 기업 지원을 넘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핵심 의제로 확장되고 있다.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은 사회적가치연구원(CSES)과 함께 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첫 ‘Ecosystem Leadership Exchange(ELE)’를 연다. SEWF는 2008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발한 사회적 기업 분야의 글로벌 네트워크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ELE 프로그램의 첫 번째 학습 대상 국가로 한국이 선정되면서 세계 15개국 19개 기관의 사회혁신 리더들이 서울로 집결했다.
참가자들은 나흘간 한국의 사회적 가치 보상 시스템을 포함해 공공 정책과 입법, 민간 투자, 국가 차원의 생태계 구축 현장을 둘러본다. 국회와 공공기관, 주요 기업 및 재단을 방문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결합한 한국 특유의 사회혁신 모델을 집중 조명한다. 행사에는 스코틀랜드 기업부 장관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정부 부처, 싱가포르 테마섹 재단, 영국·미국·캐나다의 대표 비영리재단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행사 개최에 맞춰 SEWF와 사회적가치연구원은 한국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분석한 공동 보고서 ‘Building Hybrid Ecosystems: Korea’s Experience and Global Lessons’를 함께 펴냈다. 보고서는 한국이 지난 20년간 이뤄낸 발전 과정을 짚어내며, 정책과 시장 메커니즘을 지속해서 시험하는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태원 회장은 12일 오전 ELE 첫 번째 세션 연사로 나섰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존 CSR 방식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기존 CSR은 예산 투입과 홍보 중심으로 이뤄져 실질적인 사회적 성과를 측정하는 체계가 부재했다"며 정확한 성과 측정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행복도시락, 행복나래, 사회적기업 MBA, 사회적가치연구원으로 이어져 온 생태계 구축 과정을 설명하면서 "정밀한 가치 측정에 들어가는 높은 거래 비용은 최근 AI 기술 발전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제언도 이어졌다. 최 회장은 "이타심에만 의존해서는 팽창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규모를 확보할 수 없다"며 "자발적 동기를 자극하는 정교한 성과 기반 인센티브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0년 동안 추진해 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를 국가와 사회의 비용을 줄여주는 방법론으로 정의하며,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적 가치 창출이 보상받는 '새로운 자본주의(New Capitalism)'로의 전환을 당부했다.
실제 최 회장의 SPC 구상은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공식 제안된 이후 국내외에서 다각도로 검증을 거쳤다. 국내에서는 SK가 2015년부터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해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해 왔다.
글로벌 무대에서의 논의도 구체화되고 있다. 행사 앞서 지난 8일 WEF 슈왑재단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은 공동 보고서 ‘The Impact Economy: Turning Disclosure into Demand’를 발표했다. 최 회장은 공동 서문을 통해 "사회적 가치가 실제 경제적 가치와 자원 배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시장의 규칙과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며 "시장 실패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 고조에도 불구하고 실제 자금 유입이 더딘 이유로 '임팩트 패러독스(Impact Paradox)'를 꼽았다. 혜택은 다수가 누리지만 비용은 개별 주체가 부담하는 구조, 재무제표상 드러나지 않는 경제적 효과, 장기적 성과와 단기적 기업 의사결정 간의 시차, 복수 주체 참여로 인한 기여도 불명확성 등이 장애물로 지적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구매하고 투자하는 수요를 촉진할 규제와 금융 연계 다자간 협력체계 구축이 제시됐으며, SK의 SPC가 대표 사례로 게재됐다.
해당 보고서는 12일부터 방콕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 연차총회에서도 주요 사례로 다뤄질 예정이다.
이번 SEWF 서울 행사와 WEF 보고서는 각각 '사회적 기업 생태계'와 '거시 경제 시스템'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으나, 자본의 흐름을 사회적 가치 창출로 유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현장에서 누적된 '측정-보상-시장' 연결 실험이 세계적인 정책·경제 모델로 평가받는 모습이다.
Gerry Higgins SEWF 대표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 발전 과정은 정부에서 시작되었으나 민간과 비영리조직이 고유의 방법론과 기술을 투입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화했다"며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도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