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주요 업무 지구의 오피스 시장이 거대한 전기를 맞고 있다. 향후 5년간 서울 3대 권역(CBD·GBD·YBD)에 약 257만㎡(78만 평) 규모의 신규 오피스가 쏟아져 나오는 반면, 도심권역(CBD) A급 이상 프라임 오피스의 절반 이상은 준공 20년 차에 진입한다. 신축 대형 빌딩의 공급 폭탄과 기존 자산의 노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구축 오피스들이 단순히 입지나 물리적 스펙만으로는 임차인을 끌어모으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가 최근 진행한 ‘트렌드는 바뀌었다, 빌딩은 바뀌었는가 - 오피스 트렌드와 리포지셔닝 전략’ 웨비나에서는 이 같은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노후 오피스의 가치 제고(Value-add) 전략이 집중 다뤄졌다. 자산운용사와 투자사, 임대인 등 상업용 부동산 업계 관계자 248명이 몰릴 만큼 현장의 위기의식은 팽팽했다.
자산 포지셔닝의 판도는 하드웨어 중심에서 '직장인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라는 공간 경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분위기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직장인들이 오피스 공간에서 요구하는 가치는 쾌적한 업무 환경을 넘어 몰입과 회복, 건강한 식사, 신체 관리 등 삶의 질 전반으로 확장됐다. 특히 오피스와 연계된 ‘웰니스(Wellness)’ 키워드 언급량은 최근 5배가량 급증했다. 단순히 휴게실이나 헬스장을 구색 맞추기로 넣는 차원을 넘어, 업무 몰입과 긴장 완화를 돕는 밸런스가 자산의 경쟁력으로 떠오른 셈이다.
1부 발표를 맡은 이원희 브랜딩 솔루션 팀 이사는 “직장인은 매일 경험하는 공간을 통해 오피스 빌딩에 대한 인식을 형성한다”며 “자산 리뉴얼은 시설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단순 리모델링이 아니라, 직장인의 하루 중 자산이 책임질 장면과 경험을 선별하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피스 저층부 리테일의 역할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에는 입주사 임직원의 점심식사나 편의를 지원하는 부속 시설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저녁 시간대나 주말 외부 방문객까지 유인하며 건물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광화문 일대 주요 오피스 자산의 소셜 데이터와 카드 매출 데이터를 결합 분석한 결과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디타워의 경우 ‘맛집’, ‘데이트’, ‘웨이팅’ 등 상권 관련 키워드가 강세를 보이며 오후 3시 이후 매출 비중이 56%에 달했다. 외부 고객이 일부러 찾는 미식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높은 객단가를 기록한 사례다. 그랑서울 역시 리뉴얼 이후 소셜 언급량이 322% 증가했고 20대와 외국인 결제 비중이 늘며 평일 위주의 업무 공간을 주말 상권으로 성공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서울파이낸스센터는 점심 매출 비중(51.3%)과 법인카드 결제 비율이 높아 고정적인 비즈니스 모임 수요를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별 리테일 브랜드의 화제성이 자산의 브랜드 가치로 귀속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리테일이 곧 오피스의 경쟁력이 된다는 의미다.
2부 세션에서는 노후 오피스의 실질적인 리포지셔닝 전략이 제시됐다. 현재 CBD A급 오피스의 78%가 준공 10년을 넘어섰고, 5년 뒤면 절반 이상이 20년 차 이상 노후 자산이 된다. 하지만 섣부른 전면 리모델링이 해답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준호 개발 컨설팅 팀 차장은 타깃 임차인이 건물을 찾아야 할 명확한 이유를 먼저 설정하고, 이에 맞춰 자본적 지출(CAPEX)을 선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어메니티를 천편일률적으로 갖추는 방식으로는 새로 들어서는 신축 오피스와 겨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폐쇄되거나 방치됐던 건물이 전면적 리모델링 없이 운영 프로그램과 독창적인 어메니티 도입만으로 반전을 이룬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20년간 비어 있던 시카고의 ‘올드 포스트 오피스’는 옥상정원, 웰니스, F&B 공간을 특화해 글로벌 기업들을 대거 유치했으며, ‘윌리스 타워’ 역시 저층부를 복합 공간 카탈로그 형태로 바꾸고 전문 운영사를 들여 임대율을 끌어올렸다. 미국 ‘벨 웍스’나 뉴욕 ‘브룩필드 플레이스’ 등도 지속적인 운영 콘텐츠를 결합해 가치를 되살린 대표적 리포지셔닝 성공 사례다.
채상윤 컨설팅 그룹 상무는 “오피스는 이제 단순한 건물 스펙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올 이유가 명확해야 선택받는다”며 “하드웨어와 콘텐츠, 운영을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구축 오피스 리포지셔닝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는 카드 매출 및 소셜 빅데이터, 임대 시장 통합 분석을 기반으로 노후 자산의 이용 경험을 진단하고 리포지셔닝 실행 자문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신축 오피스 공급 폭탄이 예고된 상황에서, 기존 노후 자산들이 하드웨어 재건축 대신 소프트웨어 재정의를 통해 자산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