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흔히 접하는 경고문 중 하나가 바로 ‘손대지 마시오’다. 눈으로만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는 오랫동안 이어진 정적의 규칙이다. 하지만 오는 10월 3일 서울스퀘어 별관 모두미술공간에서 열리는 한 전시회는 이 단단한 일상의 틀을 정면으로 깬다.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손끝의 감각으로 작품을 읽어내고, 그 안에 담긴 온기를 직접 느껴보라고 건네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된다.
시각장애 예술가 6인이 참여하는 기획 전시 '안부 - 보이지 않는 안부를 묻다'는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 전시실1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에이블라인드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총 40점의 작품이 공개되며, 이 중 25점은 관람객이 직접 촉각을 이용해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대다수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 속에서 이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건 주변 이웃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자연이 보낸 소리였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나뭇잎 소리, 매일 아침 울려 퍼지던 까치 소리, 거칠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이들에게 다시 붓을 쥐을 용기를 줬다. 이번 전시는 자신들을 일으켜 세워준 그 수많은 안부들에 답하기 위해 작가들이 역으로 세상에 건네는 인사이자 화답이다.
화폭 위에 구현된 방식도 일반적인 회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평면 위에 다양한 재료를 겹겹이 쌓아 올려 요철을 만들어내는 부조적 회화 기법이 주를 이룬다. 손끝의 감촉을 통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다. 박환 작가는 캔버스 위에 흙과 실, 청바지 조각, 나무껍질을 조합해 웅장한 산과 폭포를 표현했다. 재료가 건조되며 갈라진 자연스러운 틈새가 그대로 험준한 산등성이가 된다.

정은교 작가는 칠흑 같은 점자지 위에 거즈를 감은 빨대와 한지, 실리콘 등을 활용해 물고기 비늘의 입체적인 결을 살려냈다. 한영희 작가는 코스모스와 남해 바다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으며, 유진 작가는 야광 물감을 활용해 밤바다가 남긴 잔상을 포착했다. 최경은 작가는 점자의 여섯 개 점 모티브에서 착안한 도자 작품을, 허은빈 작가는 캔버스 위 점토로 형상을 세운 뒤 색을 입히는 작업을 선보인다.
터치 관람이 가능한 25점의 작품은 현장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다.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용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비장애인 관람객 역시 표면의 거친 질감과 재료가 지닌 온도, 무게감을 직접 확인하며 눈으로만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적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양드림 에이블라인드 대표는 과거 타인에게 받은 안부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작가들이 이제 그 따스함을 되돌려주려 한다며 손끝으로 작품을 읽고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확인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장 내부에는 물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세심한 장치들이 설치됐다. 바닥에는 이동을 돕는 입체 가이드라인이 깔려 발끝 감각만으로 동선을 따라갈 수 있다. 작품 옆 캡션에 새겨진 QR코드를 인식하면 자막과 음성 해설, 상세한 작품 묘사가 담긴 배리어프리 영상이 재생된다. 전시장 전체가 휠체어 이동에 제약이 없도록 설계됐으며 장애인 화장실, 전동 휠체어 충전기, 심신 안정실, 점자 리플릿이 두루 갖춰졌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공간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보고 편지를 작성하거나, 엽서에 안부 인사를 적어 전시장 내 우체통에 넣으면 주최 측에서 이를 직접 발송해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전시와 관련된 모든 인쇄물 역시 편지와 엽서 형태로 제작해 '안부'라는 테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개막일인 10월 3일 오후 3시에는 작가들과 직접 소통하는 오프닝 파티가 열린다. 인터뷰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작품 설명만 듣고 해당 작품을 맞히는 퀴즈, 작가와 관람객이 열 글자로 인사를 나누는 프로그램 등이 마련된다. 이어 오후 4시 30분부터는 작가 도슨트와 자유 관람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행사를 기획한 에이블라인드는 2021년 설립된 시각장애 예술 크리에이터 에이전시다. '검은색 사랑', '물의 색', '나의 모든 순간' 등 지속적으로 시각장애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여 왔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6 예술분야 초기창업 지원사업' 선정기업이기도 한 에이블라인드는 액셀러레이터 뉴키즈인베스트먼트의 보육 지원을 받으며 스타트업으로서의 입지도 함께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작가별 도슨트 일정은 에이블라인드 공식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