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위기를 다루는 미술 수업은 대개 녹아내리는 빙하나 플라스틱을 삼킨 해양 생물의 비극적인 장면에서 출발하곤 한다. 위기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전시기획사 넥스트 캔버스가 선택한 방식은 조금 달랐다. 아이들에게 당장 닥친 환경 파괴의 공포를 주입하는 대신 우리 주변을 오래 지켜온 상징들을 먼저 들여다보게 했다.
마을 어귀를 지키던 장승의 의미를 짚어보고 사계절 푸른 소나무가 가진 생명력을 살피는 식이다. 동물을 도화지에 옮길 때도 외형 관찰에 그치지 않았다. 해당 생물이 실제 어떤 터전에서 사는지, 어떤 위협에 직면해 있는지를 스스로 조사하는 과정을 작업 전반에 녹여냈다.
자연스럽게 사물을 관찰하는 행위는 생명과 서식지에 대한 헤아림으로 이어졌다.
전시를 기획한 석수빈 넥스트 캔버스 이사 겸 아트디렉터는 이 같은 접근법에 대해 명확한 소신을 밝혔다. 석 이사는 "아이들에게 위기만 거듭 보여주면 결국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지켜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지키는 일 자체가 아이들 자신의 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나온 결과물들이 최근 공개됐다. 넥스트 캔버스가 서울 인사동 더스타갤러리에서 기획·주관한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에 출품된 초등학생 작가 6명의 작품이다.
전시장에 걸린 6점의 그림에는 전통과 생명, 그리고 아이들 각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천수일(늘푸른초 4) 학생이 그린 ‘우리 땅의 수호자’는 짙은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사계절 푸른 소나무와 장승을 나란히 세워 올렸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져 다음 세대로 무사히 이어지길 바라는 조용한 염원이 화면을 채운다.
독도를 배경으로 삼은 이루리(늘푸른초 3) 학생의 ‘노을빛 뿔쇠오리 가족’은 바다와 절벽 사이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는 뿔쇠오리들을 그려냈다. 단순한 영토나 경관으로서의 독도가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숨 쉬고 살아가는 실제 보금자리로서의 가치를 포착했다.
야생동물의 터전 상실을 다룬 작품도 시선을 끈다. 천현주(늘푸른초 6) 학생의 ‘백단비’는 한겨울 푹 파인 눈 사이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 담비와의 짧은 만남을 표현했다. 사람들의 개발과 개입으로 서식지를 잃어가는 야생동물들이 부디 원래의 자연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강윤재(늘푸른초 4) 학생은 ‘노을 끝의 날갯짓’을 통해 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독수리를 스케치했다. 독수리의 힘찬 날갯짓에 자신감과 용기를 겹쳐 놓으며 관람객을 향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메시지를 확장시켰다.
어린 작가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돋보이는 작품도 포함됐다. 김예원(늘푸른초 2) 학생의 ‘초록빛 소풍’은 숲속 바위에 소녀와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다. 김예원 양은 "숲속 동물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며 소박한 작업 소감을 전했다.
임라윤(수내초 2) 학생의 ‘우리들의 무지개 놀이터’는 무지개 아래에서 그네를 타고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각기 다른 색이 어우러져 하나의 무지개를 완성하듯, 서로 다른 친구들이 한데 어울리는 공간의 소중함을 담아냈다.
미술 수업에서 환경이라는 메시지가 너무 앞서면 자칫 그림 본연의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기 쉽다. 석수빈 아트디렉터 역시 이 지점을 가장 경계했다.
석 이사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강해지면 역설적으로 그림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며 "메시지를 상징 뒤로 살짝 배치해야 관람객이 그림을 보며 스스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를 주관한 넥스트 캔버스는 셀리맘아트의 전시기획 브랜드다.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전시디자인전공 석사 출신인 김성해 대표(셀리맘아트 원장)와 석수빈 이사가 함께 이끌고 있다.
넥스트 캔버스 측은 앞으로도 단순히 환경 파괴의 경각심을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통과 환경을 유기적으로 잇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청소년들이 타인의 언어가 아닌 스스로의 시선으로 내일의 환경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기획 전시와 교육 활동을 지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