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이나 키즈모델을 꿈꾸는 아동·청소년과 보호자를 노린 일명 '학원형 연예기획사'의 오디션 합격 상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카메라 테스트 명목으로 방문을 유도한 뒤 "오늘이 지나면 기회가 사라진다"며 고액의 수강·컨설팅 계약을 강요하는 식이다. 막상 계약을 맺은 뒤 해지를 요청하면 환급을 거부하거나 위약금을 터무니없이 높게 물리는 사례가 잇따라 주의가 당부된다.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3년 6개월간(2023년~2026년 6월) 접수된 학원형 연예기획사 관련 피해구제 사건이 총 366건에 달한다고 22일 밝혔다.
접수 건수는 매년 큰 폭으로 뛰고 있다. 2023년 41건 수준이던 피해구제 신청은 2024년 86건으로 109.8%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148건(72.1% 증가)까지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91건이 들어와 전년 동기(52건) 대비 75%나 치솟았다.
학원형 연예기획사는 오디션 기회나 작품 캐스팅 보장 등을 내세워 소비자를 끌어모은 뒤, 연예 활동에 필요하다며 수시로 교육·트레이닝 비용을 받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사업자를 뜻한다.
소비자 피해는 연예계 진출을 갈망하는 소아·청소년과 부모의 심리를 악용한 유도 상술에서 비롯된다. 사업자들은 현장에서 실물 면접과 카메라 테스트를 진행한 직후 "당일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통보하며 즉석에서 수 백만 원대의 계약 체결을 재촉한다.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긴박감을 조성해 결제를 유도하는 수법이다.
계약 당사자 연령을 파악해 보니 20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50.3%(184건)로 절반을 차지했다. 자녀의 모델이나 아이돌 활동을 기대하는 학부모들이 주요 타깃이 됐다. 이어 시니어 모델 등에 도전하는 40~64세 중장년층이 23.5%(86건), 20~30대 청년층이 22.6%(83건)로 뒤를 이었다.
피해 유형은 사업자의 계약해지 거부나 회피 관련이 98.6%(361건)로 압도적이었다. 소비자가 뒤늦게 계약해지를 요구해도 환급을 거부(49.6%)하거나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고(24.9%), 과도한 위약금을 청구(22.7%)하는 방식으로 수수방관했다.
계약해지 사유가 확인된 328건 중에서는 단순변심이 74.7%(245건)였으나, 사업자가 처음 약속했던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분쟁도 24.1%(79건)에 달했다.
계약 불이행의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연기·모델 트레이닝이나 작품 캐스팅 오디션을 아예 제공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운영한 사례가 58.2%(46건)로 가장 많았다. 특정 드라마 출연이나 브랜드 모델 선발을 약속해 놓고 정작 해당 콘텐츠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등 사기성 사전설명과 광고에 속은 피해도 30.4%(24건)였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상 기획업자가 대중문화예술인을 모집할 때 거짓 정보나 약속을 제공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문제는 피해를 입더라도 돈을 돌려받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접수된 사건 중 환급 등으로 피해가 회복된 합의 성립 비율은 47.1%(172건)에 그쳤다. 사업자가 소비자원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자사 내부 약관만을 내세우며 합의를 거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실제 한 피해자는 웹드라마 출연 모집 광고를 보고 업체를 찾았다가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수강생에게 기회가 넘어간다"는 재촉에 당일 360만원을 결제했다. 이후 개인 사정으로 해지를 요구하자 업체 측은 프로필 촬영이나 이미지 컨설팅을 전혀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컨설팅 비용 220만원은 환급할 수 없다며 배짱을 튕겼다. 키즈모델 에이전시와 198만원에 계약했으나 19개월 동안 캐스팅 기회를 단 한 번도 제공하지 않은 채 연락을 끊어버린 사례도 파악됐다.
소비자원은 현혹되기 쉬운 오디션 합격 통보를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상적인 연예기획사는 연습생에게 트레이닝이나 데뷔를 명목으로 '프로필 컨설팅비', '관리비' 등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구두로 이뤄진 출연 약속이나 오디션 보장 등은 반드시 계약서 특약 사항으로 명시해야 한다. 계약 기간은 가급적 짧게 잡고 중도해지 시 환급 기준과 위약금 산정 방식을 꼼꼼히 떼어봐야 한다. 계약 체결 시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지도 확인 과제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오디션 합격 통보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단순 유인책일 수 있으므로 실제 활동 지원이 가능한 정식 기획사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분쟁 발생에 대비해 오디션 안내문, 광고 자료, 결제 영수증, 통화 녹음 등 증빙을 보관하고 해지 의사는 반드시 내용증명우편으로 보내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